여러분은 세계지도에서 한국을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기존의 세계지도에서 한국을 보면 한국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 동쪽끝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으로 세계지도를 뒤집어 보면 한국은 5대양 6대주로 나아가는 항구이며,

태평양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는 힘찬 바다의 기운이 느껴지는 나라입니다

오천년 한국역사속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바닷길을 개척해 한국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나간 해양 영웅들이 있습니다.

죽어서까지 동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 신라 “문무대왕”

강력한 해군력과 우수한 항해술을 바탕으로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일본에까지 큰 영향력을 확대시킨 백제 “근초고왕”

서기 512년에 동해의 우산국(울릉도)을 신라영토에 편입시켜 신라 역사 최초로 해양 영토를 개척한 “이사부 장군”

약 4만명의 거대한 수군을 직접 이끌고 전쟁을 수행했을만큼 강한 해군력을 보유했으며,
바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해양정책을 국가 경영에 활용한 고구려 “광개토대왕”

당나라의 대규모 수군과 맞서 대승을 거둔 벌포 해전의 주인공 신라 “김시득 장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바닷길을 거쳐 인도, 아랍,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혜초”

청해진을 중심으로 신라, 당, 일본 3국을 연결하는 동북아시아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동남아시아와 아랍국가까지 확장된 전세계 수많은 나라들과 무역을 추진해 바다의 왕이라는 평가를 받는 “장보고”

바다를 통해 힘을 키워 통일 국가 고려를 건국한 “왕건”

임진왜란에서  일본을 상대로 바다위에서 23전 23승이라는 승리를 이루어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조선시대 평범한 어부의 신분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안용복”

일제 강점기 932년 제주에서 바다의 경제 주권을 되찾기 위해 항일운동을 주도한 “제주해녀회”

한국의 역사속 해양영웅들은 바다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도전, 용기, 탐험, 진취적 기상, 독립정신을 높여나가는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에서 활동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은 한국해양영웅들의 활동과 꿈을 전세계 청년들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반크는 한국 청년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해양 영웅들을 알려나가면서 역사 속 해양 영웅들의 꿈을 계승해 21세기 해양문화대국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길 꿈꾸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국의 해양영웅들의 이야기를 전세계 외국인 친구들에게 알려주세요!

21세기 해양문화대국 대한민국!

한국역사속 해양영웅들의 꿈을 계승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꿈과 도전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왕 (r. 391-412) | King Gwanggaeto the Great

서양역사에서 천재적인 지략과 인술로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한국의 고대 역사에도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자했던 위대한 왕이 있다. 바로 고구려 광개토 대왕이다. 광개토대왕은 한국의 오천년 역사 중에서 가장 강성했던 나라인 고구려를 대표하는 왕으로 18세에 왕의 자리에 오른 뒤 39세에 사망하기까지 21년간 고구려를 동북아시아 최강국가로 만들었다. 전 세계를 향한 광개토 대왕의 위대한 꿈과 업적은 그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사해(四海)>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자 백성이 모두 생업에 힘쓰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풍족해졌으며, 온갖 곡식이 가득 익었다” 특히 광개토 대왕은 약 4만 명의 거대한 수군을 직접 이끌고 전쟁을 수행했을 만큼 강한 해군력을 보유했으며 바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해양 정책을 국가 경영에 활용한 왕이었다. 광개토대왕 비문에는 “광개토대왕 6년(396년)에는 왕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토벌하여 백제의 국성을 포위하고 공격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광개토 대왕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동북아시아 최고의 지리적 장점을 국가 성장의 지렛대로 삼아 고구려를 군사, 외교, 무역, 문화 등 전 영역에서 오천년 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로 우뚝 서게 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고구려는 세상의 중심이며, 고구려의 왕은 하늘의 아들이라는 크고 높은 꿈을 품고 살았다.

Achieve our dreams across the ocean in all the countries around the world!

There was a Korean king who shared the same ambition and genius as Alexander the Great, who built the largest empire in the ancient world with shrewd military and diplomatic tactics. It was Gwanggaeto the Great of Goguryeo. King Gwanggaeto, the nineteenth king of Goguryeo, expanded Korea’s territory to its largest extent during his 21 years of reign from his ascension to the throne at age 18 until his death at age 39. His adventurous ambition and accomplishments are inscribed on his epitaph. The epitaph reads, “The king’s grace reached the sky and his greatness spread across the world.” As he swept away outlaws, the people could safely focus on their livelihood. The kingdom became richer, and the people enjoyed good harvests. King Gwanggaeto led a naval force of 40,000 soldiers to conquer Baekje. He understood the importance of the ocean and used it to his advantage.

The Gwanggaeto Stele’s epitaph reads, “In the sixth year of King Gwanggaeto (396), the king himself led the naval force and attacked and captured Baekje’s capital.” By using Goguryeo’s geographical advantage that connects the continent to the ocean, King Gwanggaeto made Goguryeo the most powerful kingdom in Korea’s 5,000 years of history across all areas, including military, diplomacy, trade, and culture. The Goguryeo people perceived Goguryeo as the center of the world and their king as a son of heaven and built the largest Korean kingdom.

-근초고왕 (r. 346-375) | King Geunchogo

한국 고대 역사 속에 바다건너 중국과 일본에 큰 영향을 준 왕이 있다. 바로 백제의 제 13대 국왕으로 바다를 국가 경영의 무대로 삼아 백제를  해양 문화 대국으로 성장시킨 근초고왕이다. 고대 중국과 일본의 여러 역사책에는 근초고왕 시절 백제가 강력한 해군력과 우수한 항해술을 바탕으로 한반도를 넘어 중국과 일본에까지 큰 영향력을 확대했다는 내용이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인 역사가인 심약이 488년에 집필한 “송서” 에 따르면, “백제는 중국 요서를 침략해서 다스렸으며, 백제가 다스린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 불렀으며..”란 기록이 있다. 오늘날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칠지도” 또한 백제 근초고왕 때 일본에 선물한 것이며 이전에는 없던 진귀한 물건이라며 일본왕이 감탄했다는 일본 기록이 있다. 칠지도는 75cm 길이의 철제 칼로 좌우에 7개의 날이 마치 가지 모양으로 생겼으며 백제의 찬란한 문화 역량을 나타내는 정교한 금속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백제 근초고왕은 백제를 중심으로 중국의 요서, 산둥반도와 일본에 이르는 한중일 해양 바닷길 개척을 주도했으며, 바다를 활용해 동북아시아 국제관계를 능동적으로 주도해 백제 역사상 가장 찬란한 역사를 만들어나간 왕이다.

중국과 일본의 곳곳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대륙과 해양을 연결해 바닷길을 개척해 찬란한 문명을 만들어나간 백제의 위대한 문화유산들이 남아 있다.

Baekje is the central oceanic civilization of Northeast Asia!

Pioneer a new sea route that connects the Korean Peninsula, China, and Japan!

In ancient Korean history, there was a king who had a large influence on China and Japan. It was King Geunchogo, the thirteenth king of Baekje, who used the ocean to expand its economic and cultural influence across the region. Several Chinese and Japanese history books describe how Baekje influenced their kingdoms with its naval forces and advanced navigation during King Geunchogo’s reign. For example, the Book of Song, written in 488 by Chinese historian Shen Yue, wrote, “Baekje conquered and ruled China’s Liaoxi region and named it Jinping-jun Jinping-xian.” There are also Japanese records that state that the Seven-Branched Sword, Japan’s national treasure, was a gift from Baekje and that the Japanese king was marveled by its exquisite craftsmanship. This 75cm-long iron sword with seven branch-like prongs shows Baekje’s masterful metal craftsmanship. King Geunchogo achieved Baekje’s cultural and economic prosperity and expanded its influence to China’s Liaoxi and Shandong regions and to Japan by venturing across the ocean and building diplomatic relationships. King Geunchogo was an adventurous king, who established sea routes to connect the continent to the ocean and left lasting legacies across China and Japan.

-이사부 장군 | General Isabu

이사부는 서기 512년에 동해의 우산국(울릉도)을 신라영토에 편입시켜 신라 역사 최초로 해양 영토를 개척한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이사부는 10대에 장군이 되어 70대 후반까지 전쟁터에서 활동한 용맹한 군인이었으며 22년간 신라 국방의 최고 책임자인 병부령으로 활동해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어내고 천년왕국으로 세계사에 우뚝 서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한국의 고대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는 전쟁에서 싸우지 않고 우산국을 정복한 이사부의 영웅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고대 우산국은 오늘날 울릉도, 독도를 둘러싼 동해 바다를 지배한 해상 국가였다. 이사부는 나무로 사자를 조각해 군함에 가득 싣고 동해바다를 건너 우산국으로 향했다. 우산국 도착 후 그는 나무 사자를 우산국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 밟아 죽이겠다!” 라고 협박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 무서운 사자를 보고 공포감에 사로잡힌 우산국 사람들은 결국 싸울 의지를 상실하고 항복했다. 신라 이사부 장군의 뛰어난 지혜로 우산국은 신라 영토에 편입이 되었고, 이후 신라는 동해바다의 해상권을 장악해 바다건너 일본의 침략을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이사부는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동해바다의 왕”이라 명명될 정도로 바다를 향해 진취적으로 도전하고 개척해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인물이다.

Pioneer the marine territory in advance and broaden the dream of Silla!

Isabu was a military general and politician of Silla who acquired Silla’s first maritime territory in 512 by subjugating the Usan Kingdom, today’s Ulleungdo in the East Sea. Isabu was a bona-fide military man, who rose to a general’s rank in his teens and fought on the battlefield until his late 70s. As the head of the military for 22 years, he contributed to S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and its millennial prosperity, which made a permanent mark in world history. An old Korean history book series titled Samguksagi includes a heroic story about Isabu conquering the Usan Kingdom without a fight. The Usan Kingdom ruled today’s Ulleungdo, Dokdo, and the East Sea that surrounds these islands. Isabu carried many wooden lion sculptures on deck to Usan. Upon arrival, he shouted, “Surrender now! If not, we will release these beasts and kill you all.” Frightened by the sight of the strange beasts, the Usan people lost their fighting spirit and surrendered.

Thanks to Isabu’s wisdom, Silla effortlessly annexed the Usan Kingdom and strengthened its naval defense against Japan by taking control of the sea. Today’s Koreans call Isabu “the king of the East Sea” for his pioneering venture into the ocean and opening boundless new possibilities.

-문무대왕 (r. 661-681) | King Munmu the Great

한국의 고대 역사서인 삼국유사에는 “내가 죽으면 땅에 묻지 말고, 유골을 화장해 동해에 묻어라! 동해의 용이 되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킬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긴 위대한 왕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죽어서도 바다를 통해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다고 유언을 한 문무대왕이다. 문무대왕은 천년역사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신라왕국의 30대 왕(재위 661∼681)이며, 오천년 한국역사 최초로 해양 행정기관인 선부(船府)를 설립하여 바다와 배를 조직적으로 관리했다. 그는 바다를 통해 적극적으로 국제교류 활동을 추진하여 신라의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고구려와 백제를 제치고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위대한 업적을 성취했다. 또한 그는 676년 중국 당나라가 한반도에 영향력을 강화하고자 시도할 때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쫓아내는데 큰 역할을 수행했다. 죽어서까지 바다에서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유언은 후대에 이루어졌다. 731년경 일본이 300척의 선박으로 신라를 침략했다. 하지만 문무대왕이 설립한 선부를 통하여 해군과 해운력을 기른 신라는 동쪽 해안으로 쳐들어온 일본을 격퇴했다. 문무대왕은 바다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생각했으며, 해양외교를 통해 삼국통일을 이룩하고, 해양 전력을 강화해 주변국의 침략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위대한 대왕이다.

Even if I perish, I will be the dragon of the East Sea to protect Silla!

An old Korean history book series titled Samgukyusa includes a story about a great king, who left famous last words: “After my death, do not bury my body in the ground. Cremate it and put my ashes in the East Sea. I will become a dragon in the East Sea and continue to protect our nation in my afterlife.” The king was King Munmu with an eternal dedication to the kingdom. He was the thirtieth king (reign: 661-681) of the Korean millennial kingdom of Silla( 57 BC-AD 935). He established Seonbu, the first maritime administration in Korea’s 5,000 years of history that managed naval and maritime affairs.

King Munmu actively engaged in international trade to expand Silla’s regional influence and achieved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by conquering Baekje and Goguryeo. Also, he played a key role in expelling Tang China in 676 and thwarting China’s ambition to subjugate Korea. He fulfilled his promise to protect the kingdom even after his death. In 731, Japan invaded the eastern coast of Silla with 300 vessels. Silla defeated Japan with its well-prepared naval forces that had been trained under the management of Seonbu. The king considered control of the ocean, the backbone of national security and economy. King Munmu was a foresighted king who unified the three kingdoms and defended the Korean peninsula from foreign powers through strategic diplomacy and strong naval forces.

-김시득 장군 | General Kim Si-deuk

고대 중국역사에서 강력한 나라였던 당나라와 해전에서 싸워 크게 승리한 위대한 장군이 있다. 바로 기벌포 해전을 승리로 이끈 신라의 김시득 장군이다. 중국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신라마저 지배하려고 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과 함께 당 나라와 치열하게 싸워 승리했다. 신라가 당시 강대국이었던 당나라와 싸워 승리한 결정적인 계기는 675년 한탄강 남안의 매소성 전투와 금강 하구의 기벌포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벌포 해전은 신라 수군이 당나라의 대규모 수군과 맞서 대승을 거둔 것으로 고대 한민족 역사상 위대한 해전 승리로 기록된다.

한국의 고대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는 이 해전에서 승리를 이끈 신라 김시득 장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신라 장군 김시득이 수군을 거느리고 중국 당나라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첫 싸움에서 졌지만 이후 크고 작은 22회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4천여 명을 사살했다.”

김시득이 이끄는 신라 수군의 승리로 신라는 한반도 서해바다의 재해권을 장악했으며 7년간의 당나라와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무엇보다 기벌포 해전에서 고대 초강대국인 당나라의 침략에 맞서 승리를 이끈 신라는 이후 고구려, 백제 유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한국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를 건설했다. 바닷길로 침략하는 적에 맞서 한민족의 정체성과 영토를 지킨 김시득 장군! 그는 오늘날 한국 청년들에게 한민족의 운명은 한국인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결정해야하며, 어떤 외부의 도전이 있어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Protect the identity of Koreans against the enemies invading by the sea route!

There was a great military leader of Silla who led a major naval victory against Tang China, a powerful dynasty in ancient Chinese history. It was General Kim Sideuk. He brought victory to Silla in the Battle of Gibeolpo. After defeating Goguryeo and Baekje through its alliance with Silla, China tried to subjugate Silla. In the face of a common threat, Silla joined hands with the dispersed people of Goguryeo and Baekje. The tide turned in favor of Silla with its victory in the battles in Maesoseong on the southern shore of the Hantangang River in 675 and in Gibeolpo at the mouth of the Geumgang River in 676. The Battle of Gibeolpo in particular was the greatest naval victory in ancient Korean history because Silla’s naval forces defeated the massive Tang naval forces. Samguksagi or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includes a story about this decisive victory led by General Kim Sideuk: “General Kim Sideuk lost the first battle against Tang General Xue Rengui’s forces, but he was victorious and caused over 4,000 casualties in the enemy forces in the subsequent 22 battles. With this victory, Silla took control of Korea’s western sea and ended the seven-year-long war.

After this historic victory against Tang China, Silla built the first unified Korean kingdom by uniting the people of Goguryeo and Baekje under the Unified Silla. General Kim Sideuk defended the Korean nation and its identity from an invading foreign enemy. He teaches us a lesson that we should make our own choices for our nation and protect our national identity against all odds.

-혜초 스님 (704-787) | Buddhist monk Hyecho

1908년 프랑스 학자 펠리오가 중국에서 아랍으로 가는 길목인 둔황 천불동 석불에서 약 1200년 전에 작성된 한 두루마리 문서를 발견했다.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이 문서는 고대 한국역사속 신라의 스님 혜초가 바닷길로 인도를 방문한 경험을 담은 한국역사 최초 해외 여행기이다.  “왕오천축국전”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도릭의 “동방기행”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와 함께 세계 4대 여행기로 불려질 만큼 세계적으로 가치와 의미가 큰 중요한 여행기록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이 한국인 혜초가 쓴 것으로 드러난 이유가 무엇일까? 인도 여행중에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긴 “누가 소식 전하려 신라(계림)로 날아갈까?”라는 구절 때문이다. 이처럼 혜초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바닷길을 거쳐 인도, 아랍,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세계인이면서 고국을 향한 절실한 그리움을 여행기에 남길 만큼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슴 깊이 간직한 한국인이었다. 혜초가 고국인 신라를 떠나 중국 당나라로 떠난 시기는 16세 어린 나이였다. 이후 혜초는 중국 수도 장안을 떠나 국제무역항으로 알려진 광주에서 배를 타고 인도에 도착해  페르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당시 바닷길을 통해 인도를 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힘든 여행길이었다. 

죽음을 각오하며 바다길을 뚫고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진리를 찾으려 하는 청년 혜초가 가진 높은 꿈, 다른 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낸 해양 개척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혜초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바닷길을 거쳐 인도, 아랍,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진정한 세계인이다.

Explore the world by sea route and let the world know the dream of Koreans!

French scholar Paul Pelliot discovered a 1,200-year old scroll in 1908 at the Mogao Caves in Dunhuang at the crossroads of China and Arabia. It turned out to be a travelogue titled “Wangocheonchukgukjeon” or Memoir of the Pilgrimage to the Five Kingdoms of India. It was written by Hyecho, a Buddhist monk of Silla, who travelled by ship to India in the eighth century.

It is Korea’s earliest extant overseas travelogue. It has outstanding universal value as one of the four classic travelogues, along with the Travels of Marco Polo, the Travels of Friar Odoric, and the Travels of Ibn Battuta. How was the author of the scroll found in China proven to be Korean? It was because of a poem he wrote in the travelogue, expressing his nostalgia for his homeland: “Who can deliver my news to my home Gyerim (another name for Silla)?” Hyecho is the first known Korean who traveled across the ocean to India, Arabia, and Central Asia. While he was an international traveler, he was also a Korean with a deep love and longing for his homeland.

Hyecho left Silla to Tang China at age 16. He went to Xi’an, the capital of Tang, and to Guangzhou, which had a main international seaport. From Guangzhou, he traveled to India, Persia, and Central Asia. At the time, a voyage to India was a dangerous and life-risking journey. He overcame his fear of death and took the risk because he was determined to expand his knowledge by exploring different cultures and histories.

Hyecho was the first Korean overseas travel writer and a global citizen who was ahead of his time.

-장보고 대사 (?-846) | Commander Jang Bogo

한국에는 매년 5월 31일을 바다의 날이라는 법정 기념일이 있다. 이 날은 한국역사 속 위대한 바다 영웅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날을 기념한 날이다. 장보고는 한국역사 속 신라 시대에 청해진(현 한국의 전라남도 완도군)이라는 군사기지를 설치해 바다의 무법자라 불리는 해적들을 소탕해서 평화롭고 안전한 해상 무역을 만들어나간 주인공이다. 또한 청해진을 중심으로 신라, 당, 일본 3국을 연결하는 동북아시아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동남아시아와 아랍 국가까지 확장된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과 무역을 추진해 바다의 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수천 년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지만 3개국 역사서 모두에 기록된 위대한 영웅은 흔치 않다. 중국 역사서인 “신당서”에는 장보고의 용맹함을 소개하고 있으며 중국 당나라 최고 시인으로 평가받는 두보는 장보고가 총명하며 동방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 기록했다. 일본의 스님 엔닌이 남긴 여행 기록엔 여행할 때 장보고에게 뱃길을 부탁할 정도로 그를 신뢰하고 흠모한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중국 산둥 반도에는 중국정부에 의해 지어진 장보고 기념관, 박물관등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장보고를 신으로 모시는 절들이 있다. 미국의 대사를 역임한 미국 하버드 대학의 라이샤워 교수는 장보고를 “해양 상업 제국의 무역왕” 이라고 평가했다. 장보고는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영하여 한국역사상 최초의 해양 상업 제국을 건설한 세계적인 무역왕이다. 

Create the largest maritime commercial state in Northeast Asia!

Korea annually celebrates Ocean Day on May 31. May 31 is the day when General Jang Bogo of Silla established the Cheonghaejin garrison. Naval hero Jang Bogo safeguarded Silla’s international trade by building Cheonghaejin on today’s Wando in Jeollanamdo and sweeping pirates from the sea. He was regarded as the king of the ocean because he built a maritime trade network that connected Silla, Tang

China, and Japan with Cheonghaejin as a trading hub and promoted trade with many other countries, including those in Southeast Asia and Arabia.

Many heroes appeared throughout Korean, Chinese, and Japanese history, but it is rare to find heroes who were documented in the history of all three countries. Jang Bogo is one of them. The New Book of Tang, an old Chinese history book, commended Jang Bogo for his courage, and famous Tang poet Du Fu described Jang as intelligent and the most successful man in the orient. Also, Japanese Buddhist priest Ennin admired Jang and thanked him for helping his passage to China. On China’s Shandong Peninsula, there is a Jang Bogo memorial and museum, built by the Chinese government. In Japan, there are temples that deify Jang Bogo. Edwin Reischauer, who served as the American ambassador to Japan and a professor at Harvard University, described Jang as “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 in his book, Ennin’s Travels in Tang China. Jang Bogo was a fearless trade king, who built Korea’s first maritime commercial empire.

-왕건대왕 (r. 918-943) | King Wang Geon the Great

한국의 고대 역사서인 “고려사”에는 바다를 통해 힘을 키워 통일 국가의 지도자로 우뚝 선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영어이름인 KOREA 근원인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덕진포 해전 이야기이다. 912년 지리적으로 중요한 거점지인 덕진포에서 왕건은 적의 군대와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왕건을 따르던 부하들은 적의 힘과 위세에 두려움에 떨며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이때 왕건은 말했다 “근심하지 마라. 싸움을 이기는 것은 숫자가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있다” 그리고 왕건은 바다 바람의 방향을 이용해 적 군함에 불을 지르는 해양 작전을 추진했고, 이를 통해 적의 정예군을 대상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바다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통해 해전에서 승리한 왕건의 명성은 빠르게 확산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다. 이후 왕건은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로 모아 향후 고려 건국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오천년 한국 역사상 한민족을 실질적으로 통합한 국가 지도자가 되었다. 알려지지 않았던 한명의 해군 장군이었던 왕건이 훗날 한국역사 속에서 위대한 통일 국가를 세울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통해 위대한 꿈을 꾸었고, 자신의 삶속에서 바다를 경영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왕건은 바다를 통해 힘을 키워 통일 국가 고려를 건국한 위대한 왕이다.

Pursue a great dream of building a unified country through the ocean!

An old Korean history book series about Goryeo(918-1392) titled Goryeosa includes a story about the founder of Goryeo, who built a unified kingdom by controlling the sea. The story is about the Battle of Deokjinpo where Goryeo’s founder Wang Geon took control of a strategic seaport. The name Korea originated from Goryeo. In 912, Wang Geon’s naval forces were preparing for a big battle at Deokjinpo. Frightened by enemy forces, his subordinates lost their fighting spirit. Wang Geon said, “Do not fear. What wins victory is not numbers, but uniting the power of minds.” Then, he made a plan to set fire to enemy vessels by using the direction of the wind at sea, leading to a decisive victory against powerful enemy troops. As the news of the victory spread quickly, people began to follow Wang Geon for his wisdom and excellent knowledge of the sea. He gathered his followers and created a human network to build the Goryeo kingdom. Eventually, Wang Geon unified all the Korean people for the first time in Korea’s 5,000 years of history.

Wang Geon, once an unknown general, became the leader to unify the Korean nation because he had a great dream of the ocean since childhood and built his knowledge and skills to achieve that dream. Wang Geon was the founder of Goryeo who unified the Korean people by raising his power in the ocean.

-최무선 (1325-1395) | Scientist Choe Museon

세계 최초의 함포 전투의 위대한 승리가 한국에서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서양 역사에서 최초로 화포를 사용해 적선을 격침한 해전으로 1571년 유럽 동맹과 오스만투르크 사이의 레판토 해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역사 속 고려시대에 서양의 레판토 해전보다 191년 앞서 적선을 화포를 사용하여 격침시킨 해전이 있다. 바로 진포대첩이다. 1380년 고려시기 약 1만 명 이상의 일본 왜구들은 500척에 이르는 함대를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이때 고려 수군은 100척의 함선에 설치된 화포를 발사해 적선 대부분을 파괴하고 전투를 승리했다.  

진포대첩으로 역사에 기록된 이 싸움은 함포 전으로 전개된 세계 최초의 해전이다. 한국 고대 역사서인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연기와 불길이 하늘을 덮었고 배를 지키던 적병은 거의 타 죽었으며 바다에 뛰어들어 죽은 자도 적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100척에 불가했던 고려 함선이 500척에 이르는 왜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둘 수 있는 이유는  함선에 화포를 설치하게 하여 전투를 승리하게 만든 최무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과학자인 최무선은 한국역사상 최초로 화약과 화약을 이용한 무기 개발을 주도하였고, 이후 고려와 조선의 수군을 강력하게 만들어 바다를 통해 적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최무선은 함선에 화포를 설치해 바다를 지키고 나라를 지킨 위대한 과학자이다. 

Install the naval gun on our vessel to protect the ocean and defend our country!

Not many people know that Korea had a great victory in the world’s first naval artillery battle. In western history, the Battle of Lepanto between the allied Christian forces of the Holy League and the Ottoman Turks in 1571 is considered the first major naval battle with artillery. In Korean history, Goryeo led a major naval victory with artillery 191 years earlier than the Battle of Lepanto. This battle was the Battle of Jinpo. In 1380 during Goryeo, a Japanese fleet of 500 vessels with more than 10,000 soldiers invaded Korea. The Goryeo navy swept away the Japanese fleet by destroying most of the enemy vessels with cannons fired from 100 naval vessels. The Battle of Jinpo was the first naval artillery battle in the world. According to Goryeosa or the History of Goryeo, smoke and flames covered the sky and enemy soldiers were engulfed in flames, and some jumped off the vessels and drowned. Behind Goryeo’s victory against Japan, which had five times more vessels than Goryeo, was Choe Museon, who had cannons installed on the vessels. As a scientist and inventor, Choe led the development of gunpowder and artillery, strengthening Goryeo and Joseon’s navy and contributing to defending Korea at sea. Choe Museon was a great scientist, who defended the nation with naval artillery.

-이순신 장군(1545-1598) | General Yi Sun-shin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이 말은 조선시대 일본과 전쟁 중 이순신 장군이 왕에게 보고한 말이다. 당시 그가 온힘을 다해 육성한 해군과 많은 함선들은 그를 대신한 다른 장군이 이끈 전투에서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 이에 왕은 이순신 장군에게 해군을 해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적에게 바다를 빼앗기면 나라 전체를 빼앗길수 있다며,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12척의 배로 전투에 출전을 하겠다고 왕을 설득했다. 자신을 향한 정권과 최고 통치자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구하러 바다로 떠난 이순신 장군과 그의 부하들은 단 12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적 함대에 맞서 승리를 했다.

명량 대첩(1597)이라 불리는 이 기적과도 같은 승리는 조선 역사 뿐 아니라 전 세계 해전 역사에서도 볼수 없었던 위대한 승리이다. 이순신 장군은 16세기말 조선의 영토와 삶을 파괴한 일본의 침략 전쟁이자, 동아시아 최대 전쟁인 임진왜란에서 바다위에서 23전 23승이라는 승리를 이루어 참혹한 전쟁을 종결시켰고 아시아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의 기적같은 승리의 배경에는 그가 전쟁에 앞서 고도로 훈련된 수군을 양성했고, 최첨단 돌격선 ‘거북선’을 건조했으며 바다에서 일본군을 격퇴할 전술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당시에는 불가능하고가 여겨지는 함선위에서의 포격 전술을 완벽하게 구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오늘날 세계 해전역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이순신장군은 바다를 지켜 나라를 구하고 아시아 평화를 만들어낸 바다의 수호자이다. 

I still have 12 more ships lined up for battle!

“I still have twelve ships!” Admiral Yi Sunshin wrote this in his report to King Seonjo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the late sixteenth century. His successor lost the majority of Joseon’s naval forces and vessels that Yi had diligently prepared. Then, Yi was reinstituted, but the king ordered to dissolve the navy and join the ground forces. However, Yi responded with determination to defend the nation with his twelve remaining ships by stressing the importance of defending the sea. Without the king and the government’s support, Yi and his followers went to battle with the twelve ships and had a decisive victory against the Japanese naval fleet of 330 ships. The victory in this battle, known as the Battle of Myeongnyang (1597), is considered legendary in Korean and world naval history. Yi Sunshin restored peace in Asia by winning all of his 23 battles during the Imjin War, the biggest war in northeast Asia at the time, in which Japan devastated Joseon’s territory and the lives of the people. His impressive victory streak resulted from his rigorous training of the navy, building of cutting-edge Geobukseon battleships, and foresighted strategies to defeat Japan. His inventive and highly effective naval battle strategies have been studied by naval historians around the world. Admiral Yi Sunshin is one of the most respected naval heroes, who defended his country and protected peace in Asia.

– 민간외교가 안용복 | Fisherman, Civilian Diplomat An Yongbok

한국의 동해에 있는 섬인 독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누어지는데 이중 서도는 조선시대 어부인 안용복의 이름을 반영해 “독도 안용복길” 이라 부르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섬인 “독도”의 주소이름에 등장하는 안용복은 한국 조선시대 공식 역사서인 숙종실록에도 등장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안용복을 조선시대 그의 신분이었던 평범한 어부가 아니라 해군 장군이라 높이 부르며 그를 존경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섬인 독도에 그의 이름을 딴 주소를 반영하고 바다를 지키는 최고위직 인 해군장군으로까지 부를 정도로 그를 존경하는 것일까? 바로 안용복이 신분을 초월해 조선의 바다와 영토를 지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안용복은 울릉도, 독도 인근에서 해물을 채취하던 중 불법으로 조업을 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이곳은 조선의 바다이니 당장 돌아갈 것으로 강하게 요구했다. 이에 일본인들은 안용복을 납치해 일본 관료 앞으로 끌고 가, 벌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안용복은 잘못은 조선 땅과 바다에 불법으로 침입한 일본인에게 있다며 일본 관료에게 항의 했고, 결국 일본 관료는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인정하는 외교문서까지 작성해 그를 돌려보냈다.

이후에도 안용복은 울릉도를 불법 침입해 조업을 하는 일본인들을 행위에 분노하고 이를 막고자 직접 일본에 건너가 일본 관료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 정부는 1696년에 일본어부들로 하여금 다시는 울릉도에 가지 못하도록 “도해 금지령”이라는 행정 조치를 내렸다. 안용복은 평범한 어부의 신분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지킨 위대한 장군이다. 

Ulleungdo and Dokdo in the East Sea belongs to Joseon!

Dokdo in the East Sea consists of two islands, Dongdo and Seodo. On Seodo, there is a street called “Anyongbok Street,” named after a fisherman in Joseon. An Yongbok, the man whose name is chosen for Koreans’ most beloved island, appears in Joseon’s official historical record of the Annals of King Sukjong(r 1674-1720). Although he was a humble fisherman, Koreans call him admiral today to pay him the respect that he deserves. What made Koreans respect him so much

that they gave him the honorary title of admiral and even gave his name to a street on their favorite island?

It is because of his significant role in protecting Joseon’s territory, despite his low status. While gathering seafood around Ulleungdo and Dokdo, An Yongbok spotted Japanese fishermen trespassing and demanded that they stay off Joseon’s waters. Instead of complying, the trespassers kidnapped him and brought him to Japanese officials on Oki Island for punishment. Unfazed, An advocated for Joseon’s territorial rights to those islands and consequently obtained a diplomatic document stating that neither Ulleungdo nor Dokdo belonged to Japan. After seeing Japanese fishermen continuing to trespass, An visited Japan again and made an official complaint. Finally, in 1696, the Japanese government issued an administrative order that prohibited Japanese fishermen’s passage to these Korean islands. Fisherman An Yongbok was a patriotic admiral in heart, who defended Ulleungdo and Dokdo.

 

-독립운동가 제주해녀회 | Freedom Fighters Jeju Haenyeo Society

2016년 한국의 해양수산부에서 오천년 한국역사 속에서 해양 영웅 17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17명으로 선정된 해양 영웅 중 대부분이 나라를 세운 왕, 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장군 등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인물이었고, 또 남성들이었다. 그런데 이중 유일하게 여성 단체인 제주해녀회가 포함되어 선정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제주 해녀해가 한국 역사를 대표하는 해양영웅으로 선정된 이유는 이들이 일제강점기 1932년 빼앗긴 나라의 바다 경제 주권을 찾기 위해 앞장섰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정부의 후원을 받는 일본 회사들은 제주 어장을 초토화시켰고, 또 해산물을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매입해 해녀들의 경제 활동을 마비시키며 생존을 위협했다. 해녀들을 향한 일본의 수탈이 극에 달하자 김옥련, 고차동, 김계석, 부덕량, 부춘화 등 해녀 대표 5명은 제주도 해녀 어업조합에 속한 수천 명의 해녀들과 함께 일제의 침략성과 불법탄압을 알리는 대대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제주해녀회의 항일운동은 약 1만 7천여 명이 참가한 제주지역 최대규모의 항일운동으로 발전했으며 여성이 주체가 되어 빼앗긴 나라의 해양 경제 독립을 되찾기 위해 투쟁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Retrieve the stolen country and the maritime economic sovereignty!

In 2016, the Korean Ministry of Oceans and Fisheries announced 17 ocean heroes, who defended the nation during Korea’s 5,000 years of history. The majority were male, such as kings and well-known generals who defended the country in times of national crisis. A surprise was the inclusion of a women diver group called Jeju Haenyeohoe or Jeju Women Divers’ Society. This organization was selected for its role in defending the Korean people’s maritime rights in 1932 during the repressiv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Japanese corporations, sponsor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threatened the Haenyeos’ livelihood by charging exorbitant commissions and membership fees. Fed up with Japan’s exploitation, five Haenyeo representatives, including Kim Okryeon, Go Chadong, Kim Gyeseok, Bu Deokryang, and Bu Chunhwa, started a protest against Japan, along with thousands of members of the official Jeju Women Divers’ Fishery Association.

This protest developed into Jeju’s largest independence movement, participated in by more than 17,000 people. Haenyeos were ocean heroes, who led an independence movement to defend Korea’s maritime rights.